객원전문가칼럼

상속세 미술품 물납제 첫 사례와 정책 방향 - 안종석 가온조세정책연구소 대표

삼일아이닷컴 2024. 11. 27. 09:46

객원 전문가 칼럼니스트 "안종석"

가온조세정책연구소 대표

상속세 미술품 물납제 첫 사례와 정책 방향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납부하는 미술품 상속세 물납제도가 2023년에 도입된 이후 첫 사례가 나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만익의 <일출도>, 전광영의 <집합08-제이유072블루>, 쩡판즈의 <초상화> 2점의 상속세 물납을 허용하여 4점의 미술품을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에 반입한다고 전했다. 이는 2023년 1월 2일부터 시행된 상속세 미술품 및 문화유산 물납제도의 첫 사례이다. 이 상속인은 지난 1월에 서울 서초세무서에 10점의 미술품 물납 신청을 하였고, 서초세무서로부터 물납신청 통보를 받은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 등 내부인력과 현대미술 분야별 민간전문가 등 7인으로 구성된 ‘미술품 물납 심의위원회’를 구성하고 심의에 착수했다. 심의위원회는 현장실사를 시작으로 지난 5월까지 두 달간 네 차례 회의를 거쳐 10점 중 4점의 작품에 대한 물납 적정 의견을 제시했다.

2020년 한국 최초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의 상속세 재원 마련과 재정 악화 문제로 국가 중요 보물 2점이 경매로 나와 해외로 반출될 뻔한 사례가 발생하여 미술품 물납 허용이 이슈가 되었다. 이후 삼성 이건희 회장의 타계로 막대한 재산의 상속 문제가 이슈가 되었고, 2021년 4월 28일 삼성 일가에서 고 이건희 회장이 소장하던 문화재 미술품을 국가에 기증하면서 상속세 미술품 물납제도 도입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정부는 상속증여세법 제73조의2에 문화유산 등에 대한 물납 규정을 도입하였고, 이 규정은 2023년 1월 2일부터 시행되었다.

상속세를 미술품을 포함하는 문화유산 등으로 물납을 하려면 상속세 납부세액이 2천만원을 초과해야 하며, 상속세 납부세액이 상속재산 가액 중 금융재산의 가액보다 많아야 한다. 이러한 요건은 문화유산 등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물납의 경우에도 적용되는 일반적인 요건이다.

다만 문화예술품 등의 물납의 경우에는 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심의를 통해 문화유산 등이 문화유산 등이 역사적ㆍ학술적ㆍ예술적 가치가 있어 물납이 필요하다고 요청하여야 하며, ② 물납에 따른 국고손실의 위험이 크지 않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물납이 허용된다. 물납이 허용되는 문화유산 등은 ① 법률에 따라 지정 또는 등록된 문화유산과 ② 회화, 판화, 조각, 공예, 서예 등 미술품을 말한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물납을 요청하는 경우에 다음의 자료를 세무당국에 제출하여야 한다.

1. 문화유산등의 역사적ㆍ학술적ㆍ예술적 가치를 입증하는 자료 등 물납의 필요성을 입증하는 자료

2. 문화유산등의 활용 방안 및 계획에 관한 자료

3. 그 밖에 물납 허가 여부 판단에 필요한 자료

재산의 평가 과정과 절차도 다른 물납과 차이가 있는데, 미술품 등 예술적 가치가 있는 유형재산의 경우 각 전문 분야별(① 서화 및 전적 ② 도자기 및 철물 ③목공예 및 민속 장신구 ④ 선사 유물 ⑤ 석공예 ⑥ 그 밖의 골동품 ⑦ ’①~⑥’에 해당하지 않는 미술품) 2인 이상의 전문가가 감정한 가액의 평균액과 지방국세청 감정평가심의회(지방국세청장이 위촉한 3명 이상의 전문가로 구성)에서 감정한 가액 중 큰 금액으로 결정된다.

상속세 미술품 물납 제도의 도입과 확산에 대해 미술계에서는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중요한 문화예산의 해외 유출을 방지하고, 국내 미술관의 미술품 소장을 확대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테이트모던 박물관이나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소장품 중 상당수가 세금 대신 받은 작품들이라고 한다. 이러한 긍정적인 효과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미술품 물납의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편 세수입 확보 측면에서는 부정적으로 평가된다. 세금제도 운영의 목적은 세수입 확보에 있다. 제도에 충실하게 세금을 징수하여 그 재원을 공공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국세청의 의무이다. 상속세 물납제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현금성 자산으로 상속세를 납부할 능력이 없는 자로부터 상속세를 받기를 포기하는 것보다는 상속 재산 중 현금화가 가능한 물건으로 세금을 대신 납부하도록 하고 이를 나중에 현금화하여 세수입에 보태는 것이 유리하다. 그런데 미술품의 물납의 경우에는 이와 다른 목적을 가진 것으로 이해된다. 물납된 문화예술품을 문화예술계에서 박물관이나 미술관 전시 등으로 활용하고, 그에 따른 세수입 감소는 세수손실로 감당하는 것이다. 이는 세금의 일부가 다른 심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물납제도를 통해서 문화예술계 정부지출로 활용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국가에서 예산배분 과정을 거치지 않고 물납의 형식을 빌어 미술관 소장품을 사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재원배분은 비효율적이다. 이러한 비효율적인 재원배분 방식을 유지하려면 비효율성 문제를 커버할 수 있는 다른 이유가 필요하고, 그 이유는 역사적ㆍ학술적ㆍ예술적 가치가 있어 정부가 확보해야 하는 문화유산을 국고손실의 위험이 크지 않은 수준의 작은 부담으로 확보한다는 것이다. 미술품 등 문화유산의 가치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평가하고, 국고손실의 위험은 납세지 관할 세무서장이 평가한다. 국고손실의 위험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필요하면 납세지 관할세무서장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협의를 거쳐 물납을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정도 규정으로 세수 손실에 대한 예방이 충분한지 의문이다. 국고손실의 위험이 어느 정도의 손실을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납세지 관할 세무서장이 국고손실의 위험에 대한 판단을 하는 것이 타당한지도 의문이다. 납세지 관할 세무서장의 성향에 따라 물납 허용 가능성이 차이가 나타날 수도 있다. 상당히 큰 금액도 국고손실의 위험이 크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작은 금액인 경우에도 국고손실의 위험을 핑계로 물납이 거부될 수 있다. 물론 관할 세무서장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협의를 통해서 물납 대상 문화유산의 가치와 국고손실의 경중을 비교하여 평가하겠지만, 임의적 판단이 개입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임의적 판단이 개입되면 제도의 일관성 있는 공정한 운영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하여 다른 국가의 제도를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오래전부터 물납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영국의 제도이다. 영국 물납제도의 근거는 「1984년 상속법」 제230조인데, 매년 물납 승인 한도를 4,000만 파운드(약 618억원)로 설정하여 물납의 수용 여부를 결정한다. 미술품과 중요 문화재 외에도 영국 왕실이 소유한 영지에 속하는 역사적인 건물도 그 대상에 포함된다. 이러한 유물에는 미술품, 원고, 문화재, 역사적 문서 등이 포함되는데, 물납 대상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탁월하게”국가적, 역사적, 과학적 또는 예술적 중요성을 지닌 것이어야 한다1). 영국과 같이 연도별 한도액을 설정하는 경우에도 장단점이 있겠지만, 이러한 방법이 국고 손실이 심각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는데는 기여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예산 과정 또는 입법 과정을 통해서 사전에 결정된 범위 내에서 명확한 절차를 통해 물납 제도를 운영하면 미술품 물납이 더 활성화될 수도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 한 가지 검토해 볼 만한 중요한 사례는 일본의 제도이다. 일본은 등록미술품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등록미술품 제도를 바탕으로 상속세 물납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 등록미술품의 등록기준은 중요문화재와 국보로 지정된 작품 또는 세계문화의 관점에서 역사적, 예술적 또는 학술적으로 특히 뛰어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미술품 소유자가 문화청에 등록미술품 등록신청을 하여 승인받으면, 상속세 물납에 있어서 특례를 인정받게 되고 물납 충당순서에서 국채나 부동산과 동등한 1순위로 인정받아 물납에 적용된다. 등록미술품은 집에 보관할 수 없고, 미술관에 보관되어 국민에게 공개되어 있다가, 소유자에게 상속이 발생한 경우, 상속세 대신 물납이 가능하다. 이 경우, 물납 이후에 미술품이 공개되는 것과 달리 사전에 물납이 허용될 가치가 있는 미술품이 공개되고 미술관 전시 등 공공 목적으로 활용하며, 나중에 상속의 상황이 발생하면 물납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물납제도의 남용을 방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판단된다.

1) 류지혜·오재욱, “한국 미술품 물납제도 시행현황과 활성화 고찰”, 「전시디자인연구」, vol. 21, no. 1, 통권 41호, 2024, pp. 117∼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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