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 전문가 칼럼니스트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돈 줄 테니 아이 낳으라는 것은 답이 아니다.
게리 베커 - 결혼은 미친 짓일까?
결혼경제학으로 유명한 노벨경제학자 게리 베커는 결혼 옹호론자는 아니다. 그는 결혼할 때 편익과 비용을 잘 따져서 결혼을 하라는 입장이다. 그는 정확히 말하면 결혼의 기회비용에 초점을 맞춘 학자이다. 그의 입장에 설 때 정부는 결혼과 출산의 기회비용을 줄여주는 정책을 실행하는 게 바람직하다. 시장주의자 성격인 그의 입장에서는 결혼하면 잃을 것도 많다. 독신으로서 누리는 정신적 자유가 대표적이다. 결혼을 하면 가족을 부양할 의무도 생긴다. 결국 그는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것도 효용보다 비용이 큰 경우에는 합리적 의사결정으로 보았다. 효용보다 비용이 클 때 결혼을 하는 것은 그에 의하면 미친 짓이다. 그렇다면 그는 정부에 어떤 정책을 요구할까? 그는 정부가 출산율 저하를 막겠다고 출산장려금과 자녀양육비 등을 지원해 결혼과 출산의 효용을 높이는 것 자체에는 찬성한다. 하지만, 그런 정책이 결혼해서 생기는 여러 비용을 현실적으로 줄이는 데 절대적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실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혼과 출산을 애국심만으로 호소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는 한국의 저출산과 관련해 오래전에 이미 이런 해답을 내놓았다.
“저출산 문제도 그렇습니다. 아이를 낳는 효용보다 비용이 크게 부각돼서 그렇습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자녀를 더 낳기보다는 교육비 지출을 늘리는 경향이 높아지죠. 더 이상 압축적 고성장이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양질의 안정적인 일자리는 상대적으로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한국 부모님들은 둘만 낳아도 다른 부모와의 경쟁에서 뒤처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결국 출산율을 늘이려면 출산의 기회비용을 줄이는 문제를 제대로 다루어야 합니다.”
헤크먼 방정식- 오바마 대통령 정책의 모태
오바마 대통령의 ‘0∼5세 계획’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제임스 헤크먼 교수 역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다. 그는 영유아기 때의 과감한 교육과 보살핌이 다른 어떤 투자보다 경제적이고 바람직한 투자임을 입증한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나 혼자 살기도 벅찬데 아이까지’하며 푸념하는 젊은 층에게 그의 교육관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는 가난한 자에게 돈을 그냥 줘 소비를 늘린다고 다음 세대가 번영을 누릴 것 같지는 않다는 입장을 취한다. 장기적으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참다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모성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헤크먼은 조기교육에 대한 사회적 투자로 범죄율을 낮추는데 드는 비용이 경찰관 수를 늘리는 것의 5분의 1 수준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결국 모성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하다. 의 이름을 딴 ‘헤크먼 방정식’은 오바마 대통령 연설의 기초 이론이 되었다. ‘투자(Invest)+개발(Develop)+유지(Sustain)=이득(Gain)’이 핵심인데, 우리는 진정 모성 보호를 위해 어떤 투자를 하고 있는 지 반문해 본다. 헤크먼은 ‘태어나서 5세까지 집중적으로 아이들의 지적·사회적 능력을 배양하는 데 몰두하라’고 강조했다. 성인이 될 때까지 ‘우수한 교육 프로그램을 유지’해야 다음 세대의 훌륭한 사회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그의 입장에 우리는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있을까? 영유아기는 평생교육 출발점이자 인성 기초를 형성하는 시기이다. 그는 영유아 교육에 대한 국가와 사회 책임이 매 중요하다고 봤다. 사교육에 찌들어 잘 키울 자신이 없다는 젊은 층에 국가나 우리 사회가 모성보호의 관점에서 문제 해결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지 반문해 본다. 헤크먼은 영유아기가 인적자원 투자 대비 회수 비율이 가장 큰 시기라면 효율성 관점에서도 의미 있는 투자라고 보았다. 그래서 많은 국가가 영유아 교육에 재정 투자를 확대해 생애초기 교육격차를 해소하고, 질 높은 유아교육 서비스를 제공한다. 양질의 인재 육성을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는 그래서 공허하지 않다. 문제는 질 좋은 프로그램과 우수한 교수진이다.
문제는 우리의 교육 프로그램 내용과 교육 환경이 어머니의 따뜻한 가슴을 느끼게 하는 ‘헤크먼 방정식’의 정신에 따라 제대로 작동되는지 여부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돈을 주어 아이 키우는데 몰두하고 있다. 진정 돈을 주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는 있는 것일까? 지역과 기관 유형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제공되는 유아교육에 대한 제대로 된 관리와 평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제대로된 보육시설의 부족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 맞춤형 보육이란 이름에 걸맞은 제대로 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헤크먼은 인간 성장의 중요시기를 15세까지로 봤다. 그중에서 8세까지가 매우 중요한데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고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라고 조언한다. 먹고 살기 힘들다고 아이와의 소통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국가가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긴다고 한들 헤크먼의 방정식의 결과가 나올지 의문이다. 헤크먼 교수는 한국의 교육제도가 끈기, 성실, 동기 유발과 같은 비(非) 인지적인 능력 교육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워했다. 그는 한국에서 시험이 인성 평가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봤다. 인성이 경제·사회적 행동과 연결돼 사회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사회가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한 그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혹자는 확실한 양육의 공동체 부담을 강조한다. 그게 지속가능한 출생과 사회 건설이라고 한다. 혹자는 모성보호와 자아실현 간 조화로 일터와 가정 간의 양립이 가능한 환경 조성을 해야 한다고 한다.
노벨 경제학자도 두 손 두 발 들 한국의 저출생
노벨상을 탔다고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지금으로 봐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출생 절벽이 갈수록 가팔라지고 있다. 월간 출생아 수가 1분기 중 처음으로 2만명 밑으로 내려갔다. 1분기는 출생이 몰리는 시기인데도, 저출생 파고는 피할 수 없었다.
지난 4월 2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2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지난 2월 출생아 수가 전년 동월(2만20명)보다 3.3% 감소했다. 2월 기준으로 역대 최저치인 1만9362명을 기록했다. 2월 출생아 수는 2014년 3만6754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18년(2만7575명) 3만명 선이, 올해는 2만명 선이 무너졌다.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역대 최저치이자 세계 최저치인 0.72명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0.68명으로 더 떨어질 것으로 통계청은 내다본다. 분기별로 보면 이미 지난해 4분기(0.65명) 0.6명대로 진입했다. 0.7명대 출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절반에 못 미치는 수치로,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저출산이다. 통계적으로는 남자와 여자, 총 2명이 결혼해 합계출산율이 최소 2.1명(인구대체수준) 이상이 돼야 현재의 인구를 유지할 수 있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는 일본도 2021년 기준으로 합계출산율이 1.3명이다. 우리보다 훨씬 양호하다. 그런 일본 지방자치단체 중 40%가 넘는 744개가 ‘소멸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아이를 낳는 핵심 세대인 20~39세 여성 인구가 2050년 절반으로 줄어드는 지역이다. 인구 감소에 제동을 걸기 위한 국가와 지자체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경고가 들려온다. 우리 보다는 훨씬 상황이 양호하다고 하겠다.
정부는 저출산 심화에 제동을 걸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이어가고 있다. 기업이 임직원에게 제공하는 출산장려금과 관련해 기업·임직원 모두 전액 비과세 혜택을 받도록 추진 중인 게 대표적이다. 부영 그룹이 "아기 낳으면 1억"을 내세웠다. 부영그룹이 출산한 직원들에게 자녀당 현금 1억원씩 지급하겠다는 출산장려책을 발표한 것이다. 2021년 이후 태어난 자녀가 대상이고, 자녀 1명당 현금 1억원을 일시에 지급하는 방식이다. 기업이 그런 문화를 조성하는 것은 칭찬할만하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정부가 연 약 23조원을 들여 부영 그룹처럼 출생아 1명당 1억원을 지원하는 방안에 대한 여론 조사를 진행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그동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한 저출산 관련 대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다. 돈으로 저출산을 해결한다면 모든 나라가 그렇게 할 것이다. 1억 줘도 결혼하지 않을 거라면 다음에 어떻게 하겠나? 청년들이 ‘결혼과 육아’라는 선택보다 ‘비혼과 비출산’이라는 선택이 더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들의 말을 받아들여야 할까? 그런 청년들을 키운 것은 기성세대이다. 부영이 그렇게 한다고 모든 기업이 그렇게 해야 할 의무는 없다. 저출산은 선택이자 결과이다. 그런 결과가 나오게 한 것은 기성세대의 잘못이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부자가 될수록 아이를 많이 나아야 하는데, 왜 선진국이 될수록 출산은 줄어들까? 어쩌면 저출산은 현대 자본주의의 숙명이고 압축 성장으로 선진국 대열에 든 대한민국에서 유독 심하게 발생한 것이 아닐까? 인내심을 요하는 중차대한 문제를 돈으로 급하게 해결하려 해서는 안된다. “우리 모두의 출발은 아이입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캠페인을 벌이고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두 노벨경제학자의 말을 새겨들으며 이제라도 ‘삶의 질’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우리 사회가 리셋해야 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소통과 간절함이지 우선해야지 돈이 전부일 수는 없다. 인간의 욕망을 거스르는 정책은 실패한다. 저출생이 욕망으로 잡고 있다면 그런 욕망의 발로를 더 생각하고 계속 소통해야 하지 않을까. 더 진득한 대책을 얼굴 마주하고 꾸준히 실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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