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 전문가 칼럼니스트 "권정임"
노무사 / 위드노무법인 부대표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을 경우의 법적 쟁점들
의정갈등과 관련해 ‘전공의 집단 사직과 정부의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 ‘자동퇴직 효력 논란’ 등에 관한 언론 기사를 자주 접한 바 있다. 근로자의 자발적 퇴직은 통상 사직서 제출과 사용자의 수리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데, 경우에 따라 사용자가 제출된 사직서를 의도적으로 수리하지 않기도 한다. 근로자가 사직 의사를 재고해 주기를 바라는 의미일 수도 있으나, 반대로 사전에 조율되지 않은 일방적 퇴직을 제한하고자 하거나 사직 대신 해고·면직 등 징벌적 처분을 하기 위한 조치일 수도 있다.
이하에서는 사용자가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을 경우의 법률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주요 쟁점들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1. 사직서 수리 행위의 법적 의미
‘수리(受理)’의 사전적 의미는 “서류를 받아서 처리함”으로, ‘사직서 수리’는 사용자가 근로자의 사직서를 제출받은 후 이를 승인하는 것을 뜻한다.
사직서 제출은 일종의 법률행위로서 근로자의 의사에 따라 근로계약의 상대방인 사용자에 대해 이루어지는 근로관계 종료의 의사표시에 해당한다. 사직의 의사표시는 크게 두 가지 법적 성격으로 구분해 살펴봐야 한다. 어떤 종류의 사직인 지에 따라 상대방인 사용자의 ‘수리’행위가 갖는 법적 의미가 다르고 자동퇴직 또는 철회와 관련된 법률관계도 달라진다.
강제 근로 금지와 직업선택의 자유에 따라 근로자에게는 원칙적으로 사직의 자유가 있으므로 통상적인 사직의 경우 원칙적으로 상대방인 사용자의 동의나 승낙을 의미하는 ‘수리’를 요하지 않는다. 이 경우의 사직서 제출은 근로자의 “근로계약 해약의 고지”에 해당한다. 반면, 희망퇴직의 승인과 같이 추가적인 대가나 조건이 결부되는 특별한 경우에는 상대방인 사용자의 수리행위가 있어야 근로관계가 종료될 수 있다. 이 경우의 사직서 제출은 근로계약 해지에 관한 ‘청약’에 해당한다.
사직의 의사표시가 근로계약 해지에 관한 근로자의 일방적 통고라면 근로관계의 유효한 종료를 위해 ‘수리’와 같은 사용자의 행위가 별도로 필요하지 않다. 이 경우 사용자의 ‘수리’ 행위는 사직서에 기재하거나 근로자가 원하는 사직일에 대해 합의했다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사직의 의사표시가 근로계약 해지에 관한 근로자의 ‘청약’이라면 사용자의 ‘사직서 수리’는 이에 대한 ‘승낙’으로서 근로관계 종료에 관한 당사자간 의사의 합치가 이루어져 비로소 근로관계 종료의 효력이 발생함을 의미한다.
2. 사용자가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을 경우의 법적 쟁점
1) 사직의 의사표시에 흠이 있는 경우
근로자의 사직의 의사표시에 법적인 흠(하자)이 있는 경우에는 그 의사표시가 애초부터 무효이거나 근로자가 소급하여 취소할 수 있다. 사직서 제출과 관련해 민법상 흠 있는 의사표시에 해당하는 것은 진의 아닌 의사표시 (제107조),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 (제109조), 사기·강박에 의한 의사표시 (제110)가 있으며, 사직서 제출에 이러한 하자가 있음에도 사용자가 수리한 경우 사용자의 일방적 의사에 의한 근로관계 종료에 해당하여 ‘해고’가 되고 대부분 사유나 절차의 정당성을 갖추지 못해 부당해고가 된다.
일반적으로 사직서 제출이 흠 있는 의사표시로서 그 효력이 문제되는 경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이를 수리하여 퇴사처리를 함으로써 부당해고의 문제를 발생시키는 사례들이고 그 반대로 사용자가 수리하지 않는 경우는 당초 사직 의사표시의 효력이 부정될 가능성이 높고 사용자가 퇴직 등의 처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 쟁점이 발생하는 사례를 찾기 어렵다.
다만, 최근 의정갈등 사태와 관련해 전공의들이 집단적으로 제출한 사직서가 실제 사직 의사 없이 항의 목적으로 제출한 ‘비진의 의사표시’인지가 쟁점이 되었다. 전공의들은 실제 사직 의사의 진의로 제출한 것으로 주장하였는데, 만일 사직서 제출이 비진의 의사표시이고, 사용자가 사직서 제출이 표의자의 진의 아님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면 애초 ‘무효’에 해당하기 때문에 신분이 소속 병원에 묶이면서 사직 의사 없이 진료를 거부한 전공의들에게 각종 법적 책임이 부과될 수 있기 때문이다.
2) 사직의 의사표시에 흠이 없는 경우 : 자동퇴직의 효력
사직서 제출에 하자가 없는 경우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사직서 제출은 근로계약의 해지 통고에 해당하므로 사용자의 별도의 수리 행위 없이도 근로계약 해지의 효력이 발생한다. 사용자가 근로자가 원하는 사직일자에 따라 사직서를 수리한다면 사직일에 대한 당사자 간의 합의가 이루어져 해당 일이 퇴직의 효력발생일이 된다. 그러나 사용자가 근로자가 제출한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는다면 근로자의 사직서 제출만으로 곧장 퇴직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고 일정기간 유보될 수 있다.
근로자의 일방적 의사표시에 의한 근로계약 해지에 대해서는 노동관계법에서 규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민법의 일반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 민법 제660조에서는 기간의 약정이 없는 고용의 경우 당사자는 언제든지 계약해지의 통고를 할 수 있으나, 갑작스러운 계약해지로 인한 상대방의 불측의 손해를 방지하기 위해 상대방이 해지의 통고를 받은 날로부터 1월이 경과하면 해지의 효력이 생기도록 근로계약 해지의 효력 발생 시기를 일정 시점 이후로 미루고 있고, ‘기간으로 보수를 정한 때’에는 상대방이 해지의 통고를 받은 당기후의 일기를 경과할 때 해지 효력이 생기도록 하여 보수 책정 단위 기간과도 계약해지의 효력발생 시기를 연계하고 있다.
예컨대, 정규직인 월급제 (산정기간 : 매월 초일~말일) 근로자가 6.10. 당장 내일부터 그만두겠다며 사직서를 제출하였으나 사용자가 수리하지 않는 경우, 민법 제660조제3항 규정에 따라 사직서 제출일이 속한 6월 이후의 1기인 7월을 경과한 8.1에 자동퇴직 효력이 발생한다. 다만, 단체협약, 취업규칙 등으로 사직서 제출 후 자동퇴직 효력의 발생 시기를 30일, 1개월 등으로 규정하거나, 사직하고자 하는 날의 일정기간 이전에 사직서를 제출하면 퇴직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경우 이에 따라 자동퇴직 효력이 발생한다.
기간제 근로자의 경우에는 민법 제660조 규정은 적용되지 않고, 다만 민법 제661조 규정에 따라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으며, 그 사유가 당사자 일방의 과실로 인해 생긴 경우 손해를 배상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기간제 약정 기간이 3년 이상인 경우 3년 경과 후 언제든지 계약해지를 통고할 수 있고 상대방이 해지 통고를 받은 날로부터 3개월이 경과하면 자동퇴직 효력이 생긴다.
3년 미만의 기간제 약정의 경우 특정한 자동퇴직 효력 발생 기간을 정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사직서 제출 즉시 근로계약이 종료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오히려 반대로 부득이한 사유가 있어야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것이므로, 기간제 근로자의 경우 부득이한 사유 없이 사직서를 제출했다면 사용자가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았을 때 기간제 약정 기간이 종료될 때까지 퇴직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아니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의 경우를 준용하여 1개월 또는 당기 후의 1기를 경과한 후 퇴직 효력을 인정해야 하는 것일까?
이를 명확히 다룬 판례나 행정해석은 찾기 어렵다. 다만, 근로기준법상 강제근로금지 규정을 근거로 기간제 약정의 경우 퇴직 시기의 유보 없이 근로자의 의사로 근로계약을 해지할 수 있으나 부득이한 사유가 없는 경우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는 학설이 있으나 논거와 민법 제661조 규정의 취지 (기간의 약정이 없는 경우에 비해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계약해지권을 인정한 것은 기간제 약정 시 기간을 준수할 책임을 근로자에게도 부여하는 취지)에 비추어 타당하지 않다는 비판이 있으며, 여전히 면밀한 법적 논증이 필요한 쟁점으로 남아 있다.
다만, 실무상 기간제 근로자에 대해 사용자가 장기간 사직서를 의도적으로 수리하지 않는 케이스가 드물고,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음으로써 퇴사처리를 하지 않는 것 외에 퇴직금 불이익도 통상임금 기준 적용에 따라 제한적이고 실질적인 근로 제공을 강요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실익도 크지 않기는 하다.
3) 사직서 미수리 기간 중 사직 의사표시의 철회 가능 여부
사용자에게 사직서를 제출하였으나 아직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은 경우 근로자는 사직서를 철회할 수 있을까? 근로자가 사직서를 철회할 수 있는 시기는 사직서 제출의 법적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민법상 의사표시가 상대방에게 일단 도달한 후에는 상대방의 동의없이 의사표시를 철회할 수 없다. 따라서 사직의 의사표시가 근로계약을 종료시키는 취지의 해지 통고에 해당할 경우 일단 사직서를 제출하여 사용자에게 도달한 이후에는 비록 아직 수리가 되지 않았더라도 근로자는 사직서를 철회할 수 없다.
반면, 사직서 제출이 근로계약 관계의 해지를 ‘청약’하는 의미로서 사용자의 승낙을 필요로 하는 의사표시인 경우 그 승낙의 의사표시가 근로자에게 도달하기 이전에는 그 의사를 철회할 수 있으므로, 사용자가 사직서를 수리하기 전까지는 근로자도 사직서를 철회할 수 있다.
한편, 공무원의 경우 사직서에 따른 의원면직처분이 있을 때까지는 철회할 수 있다고 보는데, 이는 국가가 임면권을 보유한 공무원의 특성상 공무원의 퇴직에 국가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단체협약, 취업규칙 등으로 근로자의 사직서 철회 시기에 관해 법 규정보다 유리하게 규정 (ex. 수리되기 전까지 또는 면직처분이 있기 전까지 등)되어 있다면 규정된 대로 효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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