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회계학 발전의 원동력이 되다.
전(前) 한국회계학회 한종수 회장
한종수 회장
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Ph.D CPA
한종수 회장은 미국 피츠버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국제회계기준 및 국제회계감사기준의 효과 기업의 사회공헌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회계기준위원회의 비상근 기준위원, 국제회계기준 해석위원회(IFRS Interpretations Committee·IFRS IC)위원으로 활동하시며, 많은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했다. 전 한국회계학회 회장으로, 회장 재임기간 동안 그는 한국회계학회를 성장시키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한국회계학회 50주년을 맞아 동계 하계 국제학술대회 개최 및 가산자산 ESG 심포지엄 행사 등을성공적으로 개최하여 학계와 산업계 간의 교류를 활성화하였다. 현재는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로서 후배 학자 양성에 힘쓰고 있다.
Q. 안녕하세요. 한국회계학회 한종수 회장님. 먼저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인터뷰 요청을 수락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최근 한국회계학회 회장직에서 물러나셨는데요. 마지막 순간까지 하계국제학술대회 준비로 매우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셨을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삼일아이닷컴 이용자분들을 위해 한국회계학회에 대한 간략한 소개 및 회장님의 근황에 대해 말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반갑습니다. 삼일아이닷컴을 통해 저와 한국회계학회에 대해 소개해드릴 수 있어 진심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지난 1973년 창립된 한국회계학회(Korean Accounting Association KAA)는 대한민국의 회계학 연구와 발전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한국 최초, 최대의 회계학 분야 학술 단체입니다. 지난해 창립 50주년을 맞이하였으며, 반세기가 넘는 시간동안 학계와 실무계 간의 유기적 교류를 촉진하며 회계학의 학문적 연구와 실무 적용을 지원하는 명실상부 국내 대표 회계 관련 학술단체로 발돋움할 수 있었습니다.
정확한 기록이 없어 최초의 창립총회 회원 수를 알 수는 없으나 1982년 12월 20일자 한국회계학회 뉴스레터 1호에 따르면, 당시 정회원 332명, 기관회원 1개라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40여년이 흐른 2022년 말 기준, 한국회계학회는 개인회원 2,812명에 기관회원 50개 등을 포함하여 총 3,027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주목할 것은 단순히 회원 수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연구의 양과 질 또한 크게 성장했다는 점입니다. 1977년 한국회계학회의 대표적 학술지인 ‘회계학연구’가 창간된 후, 1993년에는 실무 중심의 학술지인 ‘회계저널’도 첫 발을 뗄 수 있었습니다. 이후 ‘회계학연구’와 ‘회계저널’ 두 학술지는 국내 회계학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학술지로 거듭났으며, 지난 2022년 말까지 연간 총 2,439편의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회계학연구’는 2020년 글로벌 학술논문 데이터베이스 플랫폼인 스코퍼스(Scopus)에 등재되는 쾌거를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한국회계학회는 학술지 외에도 하계학술대회와 동계학술대회를 통해 연간 총 2,986개의 학술 및 주제발표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총 1,722명의 발표자 및 토론자가 참여하는 162회의 심포지엄을 개최하였으며, 국내는 물론 미국과 중국, 대만, 일본, 유럽 등과 총 62회에 달하는 국제학술교류활동을 통해 국제적 인지도 상승의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이를 기념해 지난 2023년 10월 1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역대 한국회계학회 회장님들과 수많은 정관계 인사 등 약 200여분의 귀빈들을 모시고 성대한 창립 5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해당 행사는 단순히 기념식에 국한되지 않고, 50주년 엠블럼 제작 및 캐치프레이저 공모전 등 다양한 기념 이벤트가 병행되었으며, 50주년 기념 웹페이지를 별도로 제작되어 한국회계학회의 과거와 오늘, 미래의 변천사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50주년은 단지 한국회계학회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것을 넘어 앞으로 펼쳐질 100년을 향한 새로운 시발점이었습니다. 지난 50년 간, 유의미한 양적, 질적 성장은 물론 괄목할만한 성과도 달성하는 등 회계교육 및 회계제도 회계실무의 발전과 함께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고 자부할 수 있으나,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도 산적해있다는 것을 회원 모두가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논문의 질에 비해 국제적 위상이 낮고, 실용성보다는 연구를 위한 연구에 치우쳐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또한 AI(인공지능)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며, 회계학 관련 학회들의 통합을 통한 만족스러운 시너지를 창출하지 못했다는 점 역시 문제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지금부터라도 한국회계학회 차원에서 조속히 해결해 나가야할 중차대한 사항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Q. 지난달 개최된 ‘2024년 한국회계학회 국제학술대회’에 역대 최다인 약 500여명의 회원들이 참가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학회에서 꼭 참고해야 할 회계 동향과 관련 업계에서 주목해야 할 트렌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크게 두 가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나는 지난 몇 년간 우리 모두를 괴롭혔던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된 첫 번째 해이기 때문입니다. 2020년 코로나19가 최초 발생한 이후 2021년에는 온라인 학술대회로 대체하였고, 2022년과 2023년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학술대회를 진행하는 등 정상적인 운영에 한계가 따랐던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한국회계학회는 일본, 대만 등과 국제교류프로그램 진행하고 있었는데 외국 대표들의 오프라인 학술대회에 참가가 어려웠죠.
완전한 오프라인 학술대회로 정상 개최된 올해는 학회 회원들끼리 대면을 통해 서로 교류하고, 그에 따른 발표와 토론이 진행되는 것을 바라는 회원들의 갈급함이 드러난 것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국내 회원뿐 아니라 외국의 대표들과 회원들도 모두 대면으로 참석하여 완전히 코로나 시대 이전으로 돌아간 정상적인 국제학술대회였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다양한 중요 회계 이슈가 새롭게 대두됨에 따라 많은 연구와 토론의 필요성이 주효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주목해야 할 부분을 손꼽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nternational Sustainability Standards Board)는 2023년 6월 26일, IFRS 지속가능성공시기준 S1(일반요구사항)과 S2(기후관련공시)를 발표했으며, 유럽연합(EU)는 ESRS(European Sustainability Reporting Standards)을 제정했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SEC) 또한 기후변화에 대한 재무적 영향을 공시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정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국제적 추세에 따라 우리나라도 올해 4월 지속가능성공시기준의 초안을 발표하였습니다. 앞서 언급한 ESG 관련 재무 및 비재무 정보에 대한 공시기준은 회계의 기본인 보고와 공시를 크게 변화시킬 것이며,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많은 혼란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실제 보험계약(IFRS 17) 기준서는 2023년 1월 1일부터 적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매체에서 보도한 것처럼 기업별로 서로 다른 가정을 적용하는 등 올바른 적용이 매우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2023년도 재무제표가 2024년 3월에 발표됨으로써 보험계약 기준서의 적정한 적용이 다시금 중요한 이슈가 된 것이죠.
가상자산(Crypto Asset)의 경우, 이미 국민의 삶과 국가 경제의 일부가 되었지만, 일반적으로 인정된 회계기준은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IFRS 해석위원회가 제시한 암호화폐 보유자의 회계처리는 실제로 암호화폐의 경제적 실질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미국과 일본이 가상자산 관련 회계처리를 제시하고는 있으나, 가상자산 거래 중 일부분에 관한 것으로 서로 간에 상충이 있는 등 실제로 적용함에 있어 적절하지 못한 측면이 많이 있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한국회계학회는 현재 가상자산위원회를 중심으로 가상자산과 관련된 측정 및 세무, 법률, 회계처리 등 관련 이슈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가상자산 연구는 단기간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가상자산과 관련한 다양한 측면에서의 분석을 실시하는 등 새로운 회계기준 제정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 빅데이터, 데이터 애널리스트, AI 등 다양한 첨단기술의 발전은 회계사라는 직업의 존재여부 및 필요성에 대한 논쟁에 다시금 불을 붙이는가 하면 기존에 없던 기술 및 정보 제공을 통해 그동안 불가능했던 분석과 연구를 가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주기적 지정제, 내부회계관리제도의 감사, 표준감사시간 등으로 대표되는 신외감법에 의한 회계개혁이 아직까지 진행형이라는 점 또한 인지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Q. 한종수 회장님께서는 1983년 대학 재학 중 약 100여명 밖에 선발하지 않던 공인회계사 시험을 합격하셨는데요. 이후 삼일회계법인에 입사하시고 얼마 되지 않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셨다고 들었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회계법인 경력을 뒤로하고 피츠버그대학교에서 학업을 이어나가시 배경이 궁금합니다.
A. 제가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에는 3차까지 시험이 있었습니다. 저는 대학 4학년 때 1차와 2차 시험을 합격한 후 삼일회계법인에서 2년간의 수습과정을 거쳐 3차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1차 시험 당시 경쟁률이 50대 1을 넘어설 정도로 매우 높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3차 시험에서는 경쟁률이 2대 1 정도여서 경쟁률이 높진 않았지만 2차 합격생들끼리의 경쟁이었던 관계로 쉽지 않았습니다. 또한 3차에 합격만 하면 월급이 2배 이상 뛰는데 불합격하면 이를 얻지 못한다는 부담감도 있었습니다.
유학을 결심하게 된 것은 대학원 진학이 시발점이었습니다. 삼일회계법인에서 함께 일하던 선배의 권유로 모교의 석사과정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당시 두 가지의 운이 함께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한 가지는 송 자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조교를 할 수 있던 것이었습니다. 당시 연세대학교 총장과 교육부 장관을 역임하신 한국 회계학계 최고의 교수님이셨죠. 조교로서 송 자 교수님 곁에서 교수라는 직업의 중요성과 매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구를 통해 세상에 없던 이론을 구성하고 사회의 발전에 적용하는 것 또한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두 번째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귀국하신 김준석 교수님을 수업에서 만난 것을 계기로, 당시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했던 행동과학 회계(Behavioral accounting)라는 새로운 분야를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행동과학 회계는 인지심리(cognitive psychology)라는 심리학 이론을 회계에 적용하는 연구 분야입니다.
예를 들어 정보의 순서가 사람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준다는 것으로, 사람은 먼저 접한 정보에 더 많은 가중치를 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따라서 긍정과 부정, 두개의 정보를 접한다고 해도 긍정적인 정보를 먼저 접하면 긍정적으로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부정의 정보를 먼저 접할 경우, 보다 부정적으로 의사결정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정보의 위치가 사람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음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위에서 아래로 정보를 읽습니다. 따라서 긍정적인 정보가 위에 놓인다면 사람은 보다 긍정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부정적인 정보가 위에 위치하면 그 사람은 부정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심리학 이론 기반의 행동과학 회계는 실무에만 빠져 있던 저에게 있어 큰 충격이었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으로 다가왔습니다.
때마침 미국의 피츠버그대학교에는 행동과학 회계의 대가인 J. Birnberg, D. Moser, V. Heiman-Hoffman 같은 회계학 교수님들이 많이 모여 계셨습니다. 회계학 교수님들 뿐 만 아니라 행동과학 경제학에 심취한 J. Kagel, A. Roth 같은 경제학 교수님들도 계셨고, 이웃 대학인 카네기멜론대학교 심리학과에는 당시 인지심리 분야 최고의 대가인 R. Dawes, H. Simon 교수님이 계시기도 했습니다. 이에 저는 피츠버그대학교에 지원하게 되었고, 회계학은 물론 경제학, 심리학 분야 교수님들의 수업을 들으며 새로운 꿈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건데, 당시 공인회계사라는 직업은 매우 매력적이었습니다. 저의 공인회계사 자격증 번호는 2,000번보다 아래입니다. 이는 당시 공인회계사의 숫자가 매우 적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더해 한국사회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공인회계사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시기였기도 한 탓에 이를 포기하고 유학을 간다는 것에 많은 고민과 결단이 필요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언어와 문화가 다른 외국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에 많은 두려움이 존재하기도 했죠. 하지만 당장의 어려움보다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 본다는 것이 더욱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지금 이 순간, 예전과 같은 동일한 상황에서 두 개의 선택지가 있다고 해도 저는 그때와 같은 결정을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미국에서 돌아오신 후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하시면서 20여 년간 K-IFRS 회계기준을 만드시는데 많은 공헌을 하셨습니다. 1997년 IMF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 여건에 맞는 회계기준에 만들기는 무척 힘든 상황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과 특히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A. 우리나라는 1997년의 금융위기를 겪으며, IMF의 조언에 따라 1999년 한국회계연구원을 설립했습니다. 이는 큰 변화였다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정부기관에서 회계기준의 제정을 담당해왔죠. 다만 정부기관에서 회계기준을 제정한다는 것은 회계기준의 가장 중요한 속성인 독립성과 투명성을 보증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즉 어쩔 수 없이 정부의 정책방향에 따라 회계기준이 제정될 수밖에 없고, 이는 회계기준이 기업의 경제적 실체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을 대변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IMF는 우리나라의 구조적 문제가 금융위기의 원인 중에 하나라고 판단하였으며, 한국 기업의 위기를 회계가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금융위기가 발생했다고 진단한 것이죠. 이에 한국회계연구원은 이후 한국회계기준원으로 개칭하여 우리나라만의 회계기준을 독립적으로 제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한계가 뒤따랐습니다. 형식적으로는 한국회계기준원이 독립되어 있으나, 한국 정부 및 기업들의 압력과 로비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죠.
이로 인해 외국 투자자들은 한국의 회계기준으로 작성한 재무제표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는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기도 했습니다. 실제 외국 투자자가 한국 기업에 투자하지 않거나 더욱 높은 금리를 요구했고, 한국 기업의 주식가치가 실제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고 저평가되는 이른바 코리아디스카운트(Korea Discount) 현상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또한 미국 진출을 희망하는 한국 기업은 한국회계기준에 따른 재무제표에 이어 미국회계기준에 따른 재무제표를 추가로 작성하는 등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제가 2006년에 한국에 돌아왔는데요. 바로 다음 해인 2007년 우리나라는 4년 후인 2011년에 국제회계기준(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 IFRS)을 채택하는 로드맵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더 이상 우리나라가 자체적으로 회계기준을 제정하지 않고, 국제적으로 인정된 IFRS를 우리나라 기업에 적용한다는 것으로, 완전한 회계기준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외국에서 제정된 회계 기준이므로 경우에 따라 우리나라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기준이기도 합니다. 거꾸로 말해 한국 기업의 경제적 실체를 올바르게 보여주지 못할 수도 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한 저를 비롯한 한국회계학회의 몇몇 교수님들은 국제회계기준 제정기구인 국제회계기준위원회(International Accounting Standards Board IASB)에 IFRS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면 IFRS는 외환에 대해 재무제표일의 시가로 평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환율이 급격히 평가 절하되면서 따라서 한국의 조선업은 원화로 표시된 부채가 급격히 증가하는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당시 IASB가 위험회피회계의 개정안을 심의 중이었는데 해당 개정안을 적용할 시 한국의 조선 관련 기업은 대부분이 자본잠식이 발생할 위기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이에 저를 비롯한 관계자들은 영국에 있는 IASB를 방문하는 등 문제점을 직접 설명하고 설득하여 해당 개정안을 폐기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한국의 회계 관련 전문가 대부분이 IFRS 제정에 우리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겼습니다. IFRS는 IASB가 만들면 우리는 그대로 사용한다고만 생각했던 것이죠. 그러나 저를 비롯한 몇몇 교수님들은 회계기준은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라는 소신을 갖고 IASB를 설득했습니다. 그 결과 현재까지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IFRS 제정을 위해 IASB와 적극적으로 소통 및 협력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이런 과정이 잘못된 회계기준을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 가지 면만을 생각하며 만든 회계기준은 편협한 기준입니다. 다른 면을 함께 고려하게 함으로써 보다 완성된 회계기준을 만드는 과정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며, 그것이 바로 IFRS의 목적인 “a single high quality accounting standards”를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Q. 2015년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 ‘국제회계기준 해석위원회(IFRS IC) 위원’으로 선임되어, 국제회계기준 재개정작업에 참여하셨습니다. 당시 아시아를 대표해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각각 1명씩 총 3명의 위원들을 포함, 전 세계에서 모인 14인의 해석위원회 위원이 모여 진행을 하셨는데요. 해당 업무 진행과정과 함께 특히 기억에 남으셨던 일이 있으시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전 세계를 대표하는 14명의 회계전문가 중 한 명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IFRS 해석위원회(IFRS Interpretations Committee, IFRS IC) 선정은 글로벌 회계 분야 발전을 위해 공헌할 수 있었던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막중한 책임을 수반하는 어려운 자리기도 했죠. IFRS를 적용하는 전 세계의 모든 기업이 IFRS IC의 결정을 따라야 하는 관계로, 조금이라도 잘못된 결정을 내린다면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가장 기억에 남으면서 아쉬웠던 결정은 암호화폐(Cryptocurrency)와 관련된 결정입니다. 2018년 9월, IFRS IC는 IASB로부터 암호화폐의 보유와 관련된 회계처리에 대한 조언을 요청받았습니다. 오랜 논의 끝에 이듬해 6월, IFRS IC는 암호화폐를 무형자산으로 분류하도록 최종 결정하였습니다. 다만 이러한 결론은 여러 가지 제한 하에 이루어졌습니다. 다양한 가상자산 전체가 아닌 비트코인(bitcoin) 등과 같은 특정 암호화폐만을 대상으로 하고, 다양한 거래 중 보유라는 거래에만 국한되었죠. 또한 새로운 기준서 개발을 배제하고 당시의 현행 기준서 중 적용 가능한 기준서를 검토하는 것에만 한정하여 논의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러한 제한 하에서 내려진 결론은 결국 암호화폐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오류를 불러왔습니다. 저는 이러한 결론에 반대했고, 많은 위원들이 저의 생각에 동의했지만 안타깝게도 결과를 뒤집을 수는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보다 많은 노력으로 동료 위원들을 설득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현재 한국회계학회는 삼일회계법인과 협업하여 올바른 가상자산 회계처리를 만들기 위한 과정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1년만 협업하는 것이 아닌 다년간의 협업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당 협업이 성과를 낼 수 있는 수년 후에는 우리나라가 전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가상자산 회계처리 기준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성과라고 한다면 위와 같은 사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개선방안을 추진하고자 했던 의지가 계속 남아서 보다 좋은 회계기준 제정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IFRS IC 회의는 전 세계에 생중계되며, 녹음파일이 업로드되어 지금도 재단 웹사이트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일부 회계법인은 IFRS IC의 논의를 요약하여 기록으로 남기기도 합니다. 따라서 IFRS IC에서의 제가 했던 활동은 계속 존재하며, 향후 더욱 좋은 회계기준을 만드는데 공헌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현황을 IASB에 전하는 통로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도 성과로 꼽을 수 있습니다. IFRS는 전 세계가 함께 사용하는 회계기준으로, 특정 국가만이 아닌 전 세계 경제 및 회계환경을 반영해야 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다양한 의견이 저를 통해 IFRS IC 의사결정과정에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IFRS IC 의사결정과정과 결정의 의미를 국내에 알리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습니다. IFRS IC 결정의 의미는 결론만 제시되는 문서만을 읽어서는 이해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따라서 저는 한국공인회계사를 통해 여러 국내 회계법인과 기업들에게 결정과정과 결정의 의미를 설명하고, 이를 통해 국내 기업과 회계법인이 IFRS IC의 결정을 더 적절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Q.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2023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회계분야 평가 순위 47위로 여전히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회장님은 신외감법 도입 전후 7~8년을 회계시장 대격변기로 규정하셨는데요. 외감법 개정이 회계 시장에 미친 영향을 비롯해 앞으로의 해결해야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우리나라는 IMD에서 발표하는 ‘회계·감사 실무적정성 평가’에서 2018년 62개 국가 중 최하위인 62위의 불명예를 안은 후 2019년 61위, 2020년 46위, 2021년 37위로 지속적인 상승세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다시금 하락세를 겪으며 2022년 53위, 2023년 47위, 2024년에는 41위에 올라 있습니다. IMD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회계·감사 실무적정성 항목은 기업효율성 세부항목에 포함돼 있는데 기업효율성 세부항목의 전체 평가 순위가 2024년 23위인 것과 비교하면 회계분야 평가순위가 크게 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IMD의 순위에 크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평가방법이 비과학적이라는 것입니다. IMD의 평가방법은 객관적인 계량적 통계지표 등을 반영하지 않고, 해당 국가의 기업 경영 관리자를 대상으로 1개 항목 설문조사(Ex. 우리나라의 기업 회계감사와 회계업무가 적절히 이뤄지고 있다고 보십니까?)에 의존하는 방식입니다. 즉 IMD 회계투명성 순위는 매우 단순한 한 가지 질문에 근거한 주관적인 인식에 대한 설문조사라는 것입니다.
또한 전체의 생각을 대변하지 못합니다. 모 신문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약 4,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회수율이 약 2%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는 단순 계산 시 겨우 80명의 응답으로 한국의 회계 수준을 평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IMD의 평가결과를 참고할 수는 있어도 이에 대하여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신외감법 도입 이후 우리나라의 회계는 매우 높은 질적 향상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대기업들은 회계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많은 개선을 이루었습니다. 반면 중소기업은 보다 많은 향상과 개선이 필요해 보입니다. 투자자 보호라는 측면에서 볼 때 중소기업들의 회계 수준은 높지 않고, 아직도 많은 향상이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다만 회계투명성 향상을 위한 투자는 중소기업에게 부담이 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내부회계관리제도의 고도화 등 회계개혁으로 인해 증가하는 부담이 소규모 기업에게 불균형적으로 크다는 다수의 외국 연구가 있기도 합니다.
최근 들어 이와 관련해 여러 가지 정책이 발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외감법을 통헤 회계개혁을 완화하는 정책은 부정적 신호를 줄 수 있습니다. 저는 회계개혁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문제점을 개선함으로써 보다 발전된 회계개혁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이 부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찾아야 합니다. 기업은 외부 감사비 외에도 내부회계관리제도의 고도화, PA를 통한 회계 컨설팅, 능력 있는 회계인력의 고용 인력 및 시간 투자 등 회계투명성 향상을 위한 추가 지출을 하고 있는데, 아직 이들에 대한 통계자료조차 없습니다. 이에 따른 지출을 찾은 후, 어떤 지출이 투명성 향상에 보다 효과적인지에 대한 연구가 이루진다면 어느 부분에 선행적인 정책적 도움과 배려가 필요한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중소기업의 회계투명성 향상을 위해 세금 감면 등 간접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노력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질 때 회계개혁이 후퇴하지 않고, 중소기업의 부담을 경감해 주면서도 회계투명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Q. 한국회계학회 회장 뿐 만 아니라 이화여대 경영대 교수로서 한국 회계학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기고 계십니다. 수많은 논문들을 집필하시고 감수하시는 중에도 회계학회의 다양한 행사들을 끊임없이 열정적으로 추진하시는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A.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저에게 기회를 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금융감독원 회계제도실 자문위원, 금융위원회 회계제도심의위원회 위원, 한국회계기준원 비상근 회계기준위원, 국제회계기준 해석위원회 위원,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자문위원회 위원, 금융감독원 회계심의위원회 위원, 한국공인회계사회 회계연구위원회 위원장, 한국정책학회 회장, 한국회계학회 회장, IAAER Council member 등 많은 국내외에 걸쳐 다양한 회계 관련 직책을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었습니다. 이 외에도 KB금융지주, ㈜LG, 포스코인터내셔널, 현대커머셜의 사외이사로사 기업의 회계 현황을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런 기회는 저에게 우리나라의 회계와 관련해 조금은 다른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정책기구 및 감독기구에서 보는 우리나라의 회계, 작성자 측면에서의 회계, 감사인 측면에서의 회계를 모두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우리나라 뿐 만 아니라 해외의 회계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습니다. 이러한 기회들이 저로 하여금 여러 측면에서 우리나라 회계의 문제점을 볼 수 있게 해주었고, 여러 가지 행사들을 추진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아닌가 합니다.
한 가지를 더하자면 회계학자로서 실천 학문을 향한 사명감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회계학자들이 수행하는 많은 연구들이 연구만을 위한 연구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회계는 실천적인 학문인 관계로, 실제에 적용될 수 있는 광범위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실질적인 연구가 매우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교수님의 연구가 실무와 단절되는 경우도 종종 나타납니다. 또한 실무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연구가 있다고 해도 감독기구나 실무자에게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접해봤습니다. 실무에 계시는 분들은 교수님들의 연구가 실무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죠. 저는 이러한 학계와 실무의 단절을 해소하는 방법은 서로의 소통이며, 이를 위해서는 회계와 관련된 사회적 문제들을 끊임없이 행사 등을 통해서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따라 저는 회계 관련 행사에 초청을 받으면 최대한 거절하지 않고 참석하려 노력하며, 실제 많은 회계 관련 행사를 주관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수년 전 ‘원칙중심의 회계’라는 대 주제 아래, 2년에 걸쳐 기업 및 감사인, 법률가, 감독기구가 개선해야 할 사항들과 관련된 세미나를 개최하였으며, 지난 1년 간 한국회계학회의 회장으로서 가상자산 회계, 보험회계, 신외감법, 정부회계, ESG 등 다양한 회계 이슈에 대하여 많은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한국회계학회장으로서 임기를 마치시는 마무리 소감과 함께 후배 회계사들을 위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A. 챗GPT(ChatGPT)가 등장하며 가장 빠르게 없어질 직업 중 하나로 회계사가 지목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지적은 낯선 일이 아닙니다. 몇 년 전 알파고(Alpha Go)라는 AI가 이세돌 9단과 바둑을 겨룰 때에도 같은 지적이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수십 년 전 제가 대학교에서 공인회계사시험을 준비할 때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가 발명되면서 회계사라는 직업이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위기는 항상 있었지만 회계 분야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었고, 회계사의 위상 역시 가파르게 상승하였습니다. 물론 장부기장과 같은 단순한 회계 관련 직업은 AI의 영향력이 확대됨에 따라 소멸될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공인회계사의 업무와 감사라는 고유 영역이 사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회계의 기본적 속성은 측정을 통한 정보의 생성과 보고입니다. 이는 기업의 경영과 자본시장의 가장 기본적인 근간입니다. 따라서 사회가 정보를 필요로 하는 한 회계는 영원히 존재하며, 회계사라는 직업도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새로운 기술과 데이터 애널리스트 등 환경적 요인의 달라지며 업무 방법 등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고, 필요로 하는 지식 또한 달라질 것입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선제적 준비와 대응이 필요하며, 이러한 이유로 이공계 출신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인증의 영역도 재무제표 감사뿐 아니라 ESG 정보 및 비재무 정보에 대한 인증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매우 빠르게 확대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새로운 자격증에 대한 논의도 시작되고 있는 상황으로, 가상자산 등과 같이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상품과 거래들이 매우 많이 그리고 빠르게 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회계의 영역이 없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회계의 영역이 변화될 것을 의미하고 오히려 더욱 커질 것을 의미합니다.
회계사는 자본주의의 파수꾼입니다. 회계사가 없는 세상은 신뢰성 없는 정보가 판을 치는 세상일 것입니다. 따라서 항상 회계사로서 자부심을 가지실 것을 당부 드립니다. 또한 회계사라는 직업이 없어질 것인가를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뛰어들어 선제적 관점을 갖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지가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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