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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인터뷰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이전오 전(前)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인터뷰

by 삼일아이닷컴 2025. 3. 14.

이전오 교수

현. 삼일회계법인 고문위원

이전오 교수는 전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조세법 분야에서 실무와 학문을 아우르며 교육과 연구에 매진해 왔다. 1984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학문의 길을 향한 고민 끝에 1999년 미국 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LL.M 과정을 마치고 이어서 Visiting Scholar로 공부를 계속하면서 조세법 연구를 이어갔다. 성균관대학교에서 조세법 강의와 후학 양성에 헌신했으며,조세심판원 비상임심판관을 역임했다. 현재는 삼일회계법인 고문으로 활동하며 조세철학과 신탁 관련 연구에 힘쓰고 있다.

 

 

 


 

안녕하세요. 이전오 교수님. 먼저 바쁘신 와중에도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셔서 삼일아이닷컴 회원들을 대신해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삼일아이닷컴 독자들께 간단한 자기소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국내 최대 회계법인 삼일회계법인의 자회사, 삼일피더블유씨솔루션에서 운영하는

삼일아이닷컴 독자들께 제 소개를 할 수 있게 되어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987년 사법연수원 16기를 수료한 후, 1987년부터 1999년까지 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 변호사로서 다양한 사건을 다루던 중 법조인의 길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고,

학문의 길로 진로를 바꾸고 보다 깊이 있는 연구를 위해 1999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필라델피아 소재 미국 University of Pennsylvania Law School에서 LL.M 과정을 마친 후에는

Visiting Scholar로 연구를 지속했습니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후 성균관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후학 양성과 함께

조세법을 연구하고 강의하며 학문적 탐구를 이어갔습니다.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어 있는 변호사를 그만두시고,
돌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시게 된 특별한 사유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변호사로 10여 년간 일하면서 의뢰인들과 함께 고민하며 숱한 사건을 해결하는 보람도 느꼈습니다. 말씀주신 것처럼 경제적으로도 안정이 되었고요. 다만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던 와중에도 제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과연 이 길이 평생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해 말입니다.

어려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일도 의미가 있고 중요하지만 단순히 사건을 맡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법을 보다 깊이 연구하여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숙고를 거듭한 끝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유학을 결정하고 난 뒤, 대형 로펌에서 영입 제안이 들어와 잠시 고민하기도 했지만 결국 미국행을 택했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이때의 결정은 제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선택 중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불혹(不惑)을 넘기신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오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젊은 학생들도 힘들어 하는 유학생활에 많은 어려움이 있으셨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유학 시절 겪으셨던 어려움이나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들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말씀하신 대로 가정이 있고 늦은 나이의 유학생활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낯선 환경에의 적응, 언어 장벽, 그리고 어려운 학문적 도전이 끊임없이 저를 시험대에 올려놓았습니다. 특히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따라가는 것이 가장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집에서 University of Pennsylvania Law School까지 왕복 4시간을 통학하며 공부를 했는데, 영어와 컴퓨터 실력이 부족해 수업을 이해하고 따라가기가 너무 벅찼습니다. 강의실에서 교수님이 ‘Mr. Lee’라고 부르실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무슨 질문을 받을지 몰라 긴장감에 식은땀을 흘린 적도 많습니다. 교수님의 말을 따라가기도 힘든 상황에서, 자유롭게 토론하면서 노트북을 능숙하게 활용하며 수업에 임하는 미국 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저는 거의 초등학생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가장 절망적이었던 순간은 수업을 듣고도 숙제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때입니다. 당시 로스쿨에는 한국에서 온 젊고 똑똑한 유학생 네 명이 있었는데, 저는 그들에게 도움을 구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사실 조금 창피하기도 했지만 점심을 사주며 “이 형이 졸업할 수 있게 좀 도와줘”라고 부탁했고, 다행히도 모두 “그럼요! 당연하죠”라고 흔쾌히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숙제 내용을 물어보니 네 명의 대답이 모두 달랐습니다.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하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선뜻 호의를 보내준 후배들에게는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속으로 ‘믿을 놈 아무도 없구나! 결국 내가 직접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생각하고, 그날부터 밤을 새워가며 예습에 집중했습니다. 잘 정리된 미국 학생들의 노트를 빌려 베껴 쓰며 밤새 수업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무엇보다 컴퓨터로 진행되는 숙제를 하다가 곤란한 상황에 처한 적이 많았습니다. 미국은 그 당시에 컴퓨터 사용이 일상화되어 있었는데, 컴맹인 저는 이-메일에 파일을 첨부하는 기본적인 개념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으니까요. 서툰 컴퓨터 실력 때문에 진도는 한 없이 느렸고, 한밤중에 숙제를 날려버린 적도 있었고, 그때마다 아내가 곁에서 함께 해결책을 찾아주며 함께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만약 아내가 없었더라면 졸업장을 받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한 학기 한 학기 버텨내며 졸업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졸업장을 손에 쥐었을 때와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을 때는 그간의 고생과 노력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 순간 느낀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아, 결국 해냈구나!’라는 감격이 밀려왔습니다.

유학생활을 마친 후 교수님께서는 오랜 기간 후학 양성에 집중해오셨는데요.
그 외에도 정부위원회를 비롯해 여러 정부 및 공공 기관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주요 활동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하게도 여러 곳에서 저를 찾아주신 덕분에 다양한 외부활동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성균관대학교에 교수로 부임하기 전인 변호사 시절에도 경희대학교, 홍익대학교 등 여러 대학에서 오랫동안 조세법강의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성균관대학교 교수 부임 후에는 대학에서의 강의 및 연구를 비롯해 한국조세연구포럼 회장, 한국세무학회장 등을 역임하며 조세 분야의 학문적 발전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한 조세심판원 비상임심판관, 기획재정부 국세예규심사위원, 중장기조세정책 심의위원장, 국세청 법령해석 심의위원, 관세청 자체평가위원장 등의 직책을 맡아 조세법과 조세정책 수립에 기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실무와 학문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대한변호사협회, 한국세무사회 등 다양한 기관에서 강의와 특강을 진행하여 법조 실무와 학문의 가교 역할을 하려 노력했습니다.

교수님에 대해 교육자로서 정도(正道)의 길을 걸어오셨다고 평가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요.
교육자로서의 삶을 살아오시면서 가지셨던 사명이나 마음가짐이 있다면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인생은 속도가 아니고 방향이다’라는 격언을 인생의 모토로 삼고 있습니다.

천천히 가더라도 긴 인생을 뒤돌아봤을 때  후회하지 않는 나의 방향은 후학을 길러내는 것이라 여겼고,

본격적으로 교육자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교수는 학생에게 단지 지식을 전달하거나 공급하는 사람이 아니고, 학생 또한 단지 지식만을 습득하거나 소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교수는 지식의 단순한 전달을 넘어서 학생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즉, 아무리 AI시대라 하더라도 기계가 갖출 수 없는 능력과 자질을 겸비한, 창의적이면서 타인과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소통하는 인간을 길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단순한 전공지식을 넘어 문학·역사·철학의 지혜와 통찰을 갖춘 교양인이자 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 길잡이가 되어야 하는 사람이 교수의 본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교육자로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대학생들에게 단순한 지식의 전달을 넘어 스스로 생각하고 토론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로스쿨에서의 강의 이외에 자원하여 학부대학에서 「사회과학 고전읽기」와 「고전 속의 정의」 과목을 개설하여 강의했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고전을 읽고 우리나라의 구체적인 사회 문제와 연결하여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강의였는데, 매 학기마다 학생들의 반응이 너무나 뜨거웠고, 저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의무가 아니고 힘이 들뿐 아무런 혜택이 없는데도, 제가 위 과목들을 개설한 이유는 대부분의 대학 강의가 아직도 여전히 지식 전달 위주의 일방통행으로 운영되는 것에 회의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교육자의 입장에서, 대학이 다이아몬드 원석을 잘 가공하여 명품 다이아몬드를 만들어 사회에 배출하는 것이 아니라 값비싼 원석을 받아서 표준화된 기계로 깎은 후 일률적이고 규격화된 구공탄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과 미안함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기를 마칠 때면 학생들이 “이 수업을 통하여 많이 성장하였고, 대학에서 진짜 공부를 해본 것 같다”는 피드백을 주곤 했습니다.  그 순간, 교수로서의 역할에 대한 큰 보람과 감동을 느낄 수 있었고, 교육자로서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책임감도 갖게 되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오랫동안 조세 관련 문제를 중점적으로 연구하셨는데요.

여러 분야 가운데에서 조세법을 전공하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실까요?

저는 인생에서 운명이란 것이 있다고 믿는 편입니다. 사실 조세법을 전공하게 된 것도 철저한 계획보다 우연이었습니다.

사법연수원에 다니던 시절, 조세법은 법학 내에서도 거의 주목받지 못하는 분야였습니다. 당시 사법연수원에서는 처음으로 주마간산식이나마 한 시간 짜리 조세법 관련 강좌를 마련했는데 강의를 맡으셨던 국세심판소(현 조세심판원) 김두천 심판관님께서 열정을 다해 강의를 하셨습니다. 다만 연수생들은 조세법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고, 질문을 하는 이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 당시 저 또한 질문을 간절히 바라는 강사님의 말에 단순히 예의상 손을 들고 무언가 질문을 했을 뿐이었는데, 그 작은 질문 하나가 제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놓았습니다.

강의가 끝난 후 김 심판관님께서 저를 불러 세우시더니 “학생, 조세법에 관심이 많구나. 학교는 어디 나왔지?”라고 하시며 제 이름을 수첩에 적으셨습니다. 당시에는 그 의미를 깊이 깨닫지 못했지만 그것이 조세법과의 인연이 시작된 순간이었습니다.

그 후 2년쯤 지난 어느 날, 변호사 개업 광고를 신문에 낸 직후 김두천 심판관님께서 전화를 걸어오셨습니다. “세법 공부 열심히 하고 있지?”라고 물으셨지만 사실 변호사 업무에 치여 세법을 따로 공부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몇 달 후 다시 전화를 주셔서 본인이 강의하고 있는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세무관리학과에 등록하라고 권하셨습니다. 저는 마지못해 “예”라고 답은 했으나 등록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학기가 되자 다시 전화를 주셔서 “내가 대신 등록해 둘 테니 꼭 오라”고 하셨습니다. 더 이상 피할 길이 없었고, 그렇게 저는 경희대학교 대학원에 등록해 조세법을 처음으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원을 마친 후에도 여전히 조세법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을 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김두천 심판관님께서 학기 중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대학 측에서는 남은 강의를 맡아줄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심판관님께서는 병상에서 “남은 강의는 이전오 변호사에게 맡기라”고 하셨고, 학교 측에서는 저에게 강의를 요청해왔습니다. 저는 “아직 조세법을 깊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강의는 어렵다”라며 극구 사양했지만, 학교 측에서는 “병상에 계신 심판관님의 부탁인데 그것도 못하느냐”라며 원망조로 저를 설득했습니다.

결국 저는 강의를 맡게 되었고, 그때부터 조세법에 대해 비로소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제대로 된 국내 서적이 부족했던 시절이라 일본에서 책을 주문하고, 원서를 찾아 읽어가며 열심히 강의 준비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강의가 두려웠지만 수업을 이어갈수록 조세법의 논리적 구조와 중요성을 이해하게 되었고, 점차 조세법이 가진 학문적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이처럼 제가 처음부터 조세법을 전공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운명처럼 찾아온 기회와 소중한 인연이 저를 이 길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결국 조세법을 잘 알아서 강의한 것이 아니라, 가르쳐야 했기에 공부하게 되었고, 그렇게 조세법은 저와 평생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조세법학자로서 교수님께서 특별히 관심을 갖고 계시는 분야 혹은 연구 관심사는 어떤 것일까요?

조세법, 조세정책, 그리고 세무회계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각각 깊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입니다. 저는 법학자로서 조세법을 연구해 왔지만 정책적 차원에서도 조세를 바라볼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조세법은 이미 만들어진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학문이라면 조세정책은 ‘어떤 조세제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포함합니다. 단기적인 세법 개정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측면에서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 현재 우리나라 조세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급변하는 사회적/경제적 트렌드와 맞물려 우리나라의 조세정책 또한 많이 합리화되고 발전을 거듭해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미진하거나 고쳐야 할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조세정책을 수립하는 정부나 국회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주고 싶습니다.

첫째, 조세의 본질적 기능에 충실하고, 조세의 정책적 기능에 대해 지나치게 기대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조세를 정치적으로 남용하거나 심지어 징벌적 용도로 사용하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둘째, 조세정책에 있어 효율과 공평 모두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나치게 형평을 추구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압살적 조세’로 많은 논란을 일으킨 종합부동산세제의 근본적 문제점은 보유세에 있어 지나치게 형평을 추구하는 데 있었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셋째, 평등의 이념보다 자유의 이념을 기반으로 하는 조세정책을 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지향하는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는 근대입헌국가의 초석인 자유권의 확보를 통해 자리 잡은 것임을 항상 명심하여야 합니다. 즉 개인 및 기업의 자유와 경제활동을 최대한 존중하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가 우선되어야 하고, 분배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은 보완적인 것에 그쳐야 할 것입니다. 조세정책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조세회피를 막는다는 이유로 개인과 기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조세제도를 함부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넷째, 장기적인 시각에서의 고민과 연구가 필요합니다. 길을 갈 때에 목적지를 먼저 정해야 하고, 한밤중에 등대를 보고 배가 나아가는 것처럼, 조세정책을 수립할 때도 장기적인 방향을 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조세정책을 심의하기 위한 중장기 조세정책심의위원회가 설치되어 있지만 운용현황을 보면 단기적인 시각(1∼2년)에서의 조세법령 개정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10년 혹은 20년 후의 조세정책 방향을 논의하는 것과 같은 장기적인 검토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제가 중장기조세정책심의위원회의 민간위원장(정부측 위원장은 기재부 1차관)을 맡고 있는데, 민간위원장의 역량이 부족해 중장기 조세정책의 논의가 제대로 안 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자책할 때도 있습니다.

다섯째, 조세정책의 수립과정을 가급적 투명하게 공개하고, 보다 많은 토론과 의견 수렴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조세법령 개정 회의나 조세정책 관련 회의의 경우 보안을 이유로 회의 당일에 자료를 배포하고 회의가 끝나면 즉시 회수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이렇게 하면 민간위원들이 좋은 의견을 제시하기가 어렵습니다. 조세 관련 사항이 국가기밀에 관련된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자료를 공개하고, 외부의 의견 및 건설적 비판을 겸허히 수렴하여 보다 좋은 정책을 만들겠다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세제발전심의위원회에 상응하는 일본의 세제조사회는 안건은 물론이고 회의록까지 전문(全文) 모두를 국민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우리 또한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이 점과 관련해 공무원을 나무랄 일은 아니고, 정책수립 과정을 가능한 한 비밀에 붙이려고 하는 대통령실(과거의 청와대)이 하루빨리 생각을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교수님께서는 몇 년 전부터 여러 학회나 국가기관에서 ‘조세법 해석의 기준-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 ‘조세정책의 조건’, ‘조세정의와 공평과세’, ‘한국사회에서의 정의–자유와 평등’ 등과 같은 특강을 종종 해오셨는데요. 어떤 취지로 이런 강의들을 진행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제 주전공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세법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조세법을 연구한 햇수가 거듭될수록 보다 본질적인 것, 예컨대 ‘조세법 해석의 기본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조세정책의 수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등으로 생각이 확장되었습니다. 정년퇴임을 앞둔 무렵에는 ‘도대체 세금이란 무엇일까’, ‘조세 영역에서 정의란 무엇일까’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과 탐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 나머지 대학원 박사과정에 「조세철학론」이라는 과목을 개설해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한 연장선상에서 ‘한국사회에서의 정의–자유와 평등’과 같은 특강도 기획한 것입니다.

구체적이거나 급변하는 세부적인 주제들에 관해서는 연부역강(年富力强), 즉 젊고 강한 에너지를 지닌 후배 연구자들이 훨씬 잘할 것이기에 그분들께 맡기고, 보다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주제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 저와 같은 시니어 연구자의 몫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긴 시간 좋은 말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벌써 마지막 질문인데요.
교수님의 앞으로의 목표나 계획이 있으시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앞으로 크게 두 가지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먼저 신탁에 관련된 책 출간을 계획하고 있는데 빠르면 올해 연말중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향후 신탁 관련 산업이 크게 발전할 것이라고 예측해 왔습니다. 실제 최근 가족신탁분야가 급성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관련 산업은 더욱 발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보다 앞서 신탁업이 발전한 일본의 예를 참고해 민사신탁에 관한 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조세의 본질을 탐구하는 조세철학에 관한 책을 쓰고자 하는 것입니다. 시실 국내에는 조세철학과 관련된 전문 서적이 거의 없고, 서양에서도 찾기가 어려운 편이라 매우 어려운 작업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자료를 모으고, 읽고, 생각하는 막연한 단계이기 때문에 언제 책을 출간할 수 있을지 기약하기 어렵지만, 앞으로 5년 내에 조세철학에 관한 책을 꼭 펴내고 싶은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책이 출간되면 그 내용에 대해 여러분들과 다시 한 번 소통하고 싶습니다.

제가 대단한 사람은 전혀 아니지만, 그래도 학자로서 지금까지 대과 없이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 가족, 스승, 친구, 동료 선후배 등을 포함한 주위와 우리 사회의 도움 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선에서 은퇴하면, 향후에 개인적으로는 지역 서점을 열어 독서 모임이나 공동체 등의 형태로 주민들께 도움을 드리고 싶고, 또 미술관 도슨트로 활동하면서 그동안에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조금이나마 되돌려드리는 삶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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